본문 바로가기
일상

인천 차이나타운 대불호텔 전시관에 다녀왔어요

by 032-777-5777 2021. 6. 23.

지난번 주일에 가족들과 인천 차이나타운에 다녀온 포스팅을 했었는데요. 차이나타운을 다 돌고 내려오는 길에 대불호텔 전시관이 있어서 들렀다가 왔습니다. 저는 그냥 대불호텔이 뭐지? 하고 지나치려는데 은지가 학교에서 대불호텔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현장학습도 할 겸 잠시 들렀다가 왔습니다. 생각보다 재밌었습니다.

 

대불호텔 전시관 입장료

대불호텔 전시관의 입장료는 아이들은 무료이고요 어른들은 인당 1000원이었습니다. 부담없는 가격으로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역사의 일부분을 알려주는 것은 아주 괜찮은 교육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서 본인의 추억들도 함께 돌이켜 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봅니다.

 

대불호텔 전시관에서의 사진들

대불호텔은 3층까지 있었던 것 같은데요. 동선은 1층 입구로 들어와서 입장료를 계산하고 체온 측정 후 입장할 수 있는데요. 1층에서 2층을 거쳐 3층으로 간 후에는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1960년대 우리의 삶의 모습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대불호텔의 변천

대불호텔에 들어오면 액자나 포스터에 여러 가지 설명 글이 적혀있는데요. 저희는 시간상 다 읽지는 못했고요. 그림과 물건 위주로 관람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불호텔의 변천은 알고 가야 할 것 같아서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1) 대불호텔의 출발 - 1884년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미국 군함 주니아타(USS Juniata)호의 해군 군의관 조지 우즈(George W.Woods, 1858~1932)가 남겨놓은 일기장에는 그가 방문했을 당시 막 준공된 대불호텔을 보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에는 2층 목조 가옥으로 통상의 일본식 여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일본인 해운업자 호리 히사타로는 1887년 이 건물을 벽돌조의 서양식 3층 가옥으로 확장하고 1888년부터 본격적으로 호텔 영업을 시작하였다.

2) 중화루로 변신 -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인천의 숙소에서 하루를 머물 필요가 없어지고, 러일전쟁 이후 서구인들의 출입마저 뜸해지면서 대불호텔은 경영난에 빠져 폐업하게 되었다. 이후 1918년, 뢰씨 일가를 비롯하여 40여 명의 중국인들이 대불호텔을 인수하여 일본인과 중국 상인들을 상대로 북경요리 전문점을 창업하였다. 중화루는 개점하자마자 그 명성이 인천은 물론 경성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성장하며 다시 인천의 대표적 명소가 되었다.

3)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 1960년대 이후 중화루는 청관거리가 차츰 폐허처럼 변해가는 것과 운명을 같이하면서 경영난에 빠졌고 결국 1970년대 초에 문을 닫게 되었다. 1978년에 건물이 철거될 때까지 중화루라는 간판은 걸려있었지만 내부는 월세집으로 바뀌었다. 그때까지 남아 있던 대불호텔의 기물이나 중화루의 고급 가구들은 대부분 세입자들이 땔감으로 쓰거나 내다 버렸다고 한다.

 

왠지 대불호텔의 변천을 보면서 뭔가 씁쓸한 생각도 드네요. 그래도 그런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전시관으로나마 복원해서 세상에 알리고 있는 것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예전 대불호텔이 만들어졌을 당시의 사진을 입체로 만든 벽에 쏴서 만든 형상입니다. 처음 보면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림... 이겠지요? 사진 같기도 하네요.

대불호텔의 객실 내부 모습을 구현한 모습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집사람과 우리 딸은 저 침대가 너무 이쁘다고 하네요. 특히 우리 딸은 축음기가 너무 이쁘게 생겼다고 하네요.

인천에 세워졌던 서양식 호텔의 서비스 지금으로 치면 룸서비스겠지요?

서양식 룸서비스 찻잔과 식기도구들

이렇게 보니 예전에 저희 집에도 이렇게 생긴 커피잔과 스텐으로 된 접시 등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작은 커피잔처럼 생긴 도기에는 커피와 설탕 그리고 프림이 가득 들어있던 기억이 납니다. 벌써 약 40년 전의 일이네요.

왕실과 커피

여러 가지 기록들을 통해서 당시 궁중에서도 간단한 접대용으로 차와 커피를 제공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신기와 에릭슨 전화기 저 전화기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군요.

당시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서양 문물입니다. 회중시계와 안경입니다. 회중시계는 지금 봐도 너무 이쁘네요.

이건 아마도 사진기 같습니다. 옛날 사진기는 저렇게 생겼지요.

개항기에 서양의 여러 문물과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우리나라는 문화와 교육 그리고 종교적으로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사진 속 선반의 중앙에 보이는 십자가가 눈에 띄는군요.

대불호텔의 서양식 객실의 모습입니다. 우리나라의 개항기를 다룬 드라마에서 많이 봤던 세팅 같기도 합니다.

연회장

이곳은 연회장인데요. 원래 좌측의 큰 그림처럼 되어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 시기라서 다 치운 것 같아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여기를 보니 왠지 호텔의 연회장에서 사람들이 노래를 들으면서 차를 마시고 춤을 추는 영상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대불호텔에서 나오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데요. 안내에 따라서 나가면 이렇게 예전 열차를 구현해 놓은 구조물이 있습니다.  

이 열차는 청량리에서 인천을 오가는 열차래요.

원래는 그냥 단순한 벽인데 그림을 너무 잘 그려놨지요? 진짜로 열차 안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잘 그린 그림입니다. 은지한테 의자에 앉는 듯한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더니 저렇게 삐딱하게 서있습니다.

 

다 읽고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서 그냥 지나치듯 지나왔습니다. 아쉽네요. 하나하나 다 읽어봐야 하는데 말이죠.

그림이 참 정겹지 않나요? 제 나이쯤 되시는 분들은 모두 저와 같은 생각일 것 같습니다. 송도해수욕장의 글씨체도 그렇고 인물들도 그렇고 정겹습니다.

껌이라면 역시 00 껌~ 다들 아시죠? 쥬시후레시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그림입니다.

양복점입니다. 차이나타운에 이런 곳이 있었을 줄이야. 예전에 영어마을에 한번 놀러 갔을 때 이런 곳을 보고 참 재밌었는데요. 그곳과 같은 분위기랍니다.

은지 머리에 모자를 한번 씌워봤습니다.

어때요 이쁜가요? 숙녀 같네요 귀엽습니다.

재봉틀인데요. 저 어릴 적에 할머니가 애지중지하시던 그 재봉틀과 똑같습니다. 모양과 메이커도 똑같네요. 발로 페달 같은걸 밟아가면서 재봉질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항상 저한테 바늘에 실좀 꿰어달라고 하셨었는데 이제 그때의 저와 같은 제 딸이 있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흐른답니다 여러분.

이발소입니다. 아버지 따라서 많이 갔던 그런 풍경이네요. 지금은 남자들도 미용실에서 머리를 잘랐지만 저 어릴 때에는 남자는 이발소에서 여자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었지요.

1970년대쯤 우리네 생활상이 여기 모두 모여있었습니다. 한번 보실까요?

오랜만에 보는 전파사입니다. 혹시 전파사 모르시는 분은 없으시겠지요?라고 쓰면서 은지한테 물어보니 모른다네요. 그 당시에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 전자제품이 고장 나면 전파사에서 수리를 해줬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as센터 같은 곳이죠.

저희 집에도 있었던 삼천리 자전거입니다. 생긴 것도 똑같네요. 저는 어린 나이에 이게 타고 싶어도 안장에 앉으면 페달에 다리가 닿지를 않아서 안장에 앉지 않고 안장 밑에 걸치듯이 그냥 서서 자전거를 탔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위험한 일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아주 재밌게 잘 탔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더 꼬마였을 때는 저 안장 바로 앞에 분홍색으로 애기들 앉는 의자가 있었는데요. 저는 거기에 타고 아버지는 운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핸들 움직이지 말라고 아버지한테 혼났던 기억도 납니다. 그래도 왠지 핸들을 움직여보고 싶었던 기억까지 나네요.

저 자개로 만들어진 밥상 너무 오랜만이네요. 병풍도 쌀통도 텔레비전도 모두 다 익숙한 풍경입니다.

저희 집에 왼쪽에 있는 갈색 장이랑 오른쪽에 있는 검은색 장 모두 있었습니다. 

 

2층에서 내려다본모습입니다. 벽에 그린 그림도, 길 따라 이어진 가게들의 모습들도 1960~70년대를 잘 구현해 낸 것 같습니다. 어르신분들 모시고 오면 아주 재밌어하실 것 같습니다.

옛날 공중전화입니다. 저 당시까지만 해도 핸드폰은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였더랬지요.

극장의 포스터들입니다. 예전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극장 간판은 모두 손수 그림으로 그렸었지요. 그림 그리는 분이 극장 포스터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본 기억이 납니다.

옛날 화장실이죠.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맨발의 청춘 어른 200원이네요. 싸다 싸~

 

인천 차이나타운 대불호텔 전시관 방문 후기

오늘 포스팅은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대불호텔 전시관에 대해서 포스팅을 해봤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삶을 살아오셨을 테니 모두 예전의 추억과 기억에 즐거워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장료도 어른이 1천 원에 아이는 무료라서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보다는 동화마을 구경하고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 먹고 소화시키는 길에 한 번쯤 들러보면 재밌을 코스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저도 재밌었지만 우리 딸이 엄청 재밌어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럼 담에 또 찾아오겠습니다.

댓글